☆140자 다지원 소식
□ 다지원 세미나강좌 PRAB & NEHU ∥2010년 5월 4일∥발제자: 겸암
텍스트: 맑스,『저작선집』, 박종철출판사, 2009, 54~61쪽
1. 요약
1.1. 빠리는 반혁명 음모의 길에서 유일하게 심각한 장애물이었고, 음모가들은 뻔뻔한 거짓말로 무장해제를 요구하였다: 국민방위대의 대포는 국가 소유이다!
1.2. 9월 4일 혁명의 진정한 구현체는 무장한 빠리였다. 빠리는 혁명을 위해 혁명과 굶주림의 공포를 무릅쓰고 5개월동안의 포위 공격을 견뎠다.
1.3. 영광스러운 3월 18일의 노동자 혁명은 빠리를 장악하였으며 중앙위원회가 그 임시 정부였다.
1.4. 3월 18일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에는 ‘상류계급’의 혁명이나 반혁명에 팽배한 폭력행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적들은 규탄할 만한 계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1.5. ‘질서의 사람들,’ 즉 빠리의 반동배는 3월 18일의 승리에 전율하였으며, 그들에게 그것은 인민의 복수가 마침내 몰려 온다는 신호였다. 그들의 공포가 그들 자신의 유일한 벌이었다.
1.6. 1849년 6월 13일 빠리 국민 방위대가 평화시위를 벌였을 당시 질서파 장군 샹가르니에의 군대는 이들을 쏘아 쓰러뜨렸다. 뒤포프는 의회를 통해 새로운 탄압법을 사주하였고, 빠리에는 새로운 체포, 새로운 추방, 새로운 공포지배가 시작되었다.
1.7. 1871년 중앙위원회는 ‘평화시위의 영웅들을 방임하였고, 내전을 계속할 것을 주저하였다.
1.8. 질서파는 꼬뮌이 선출되는 3월 26일 투표함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날 질서의 사람들은 때가 되면 피의 복수랄 하겠다는 맹세를 마음 속에서 중얼거리는 동시에 고나대한 승리자들과 부드러운 화해의 말을 주고받았다.
1.9. 대량살상과 잔학 행위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