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계속되는 호혜성


그런데, 국가 이전의 부족적 공동체에 있어서 호혜원리는, 그리 쉽게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집권적인 국가로 이행하는 것에 저항하는것만이 아닙니다. 국가가 성립하는데도, 그것은 집요하게 잔재합니다. 그 점에서 흥미 깊은 것은, 몽골이 중국을 지배하여 생겼던 원왕조입니다. 유목민인 몽골은, 중국에서 동양적 관료국가체제를 이어받아, 지배계급의 사이에서는 부족적인 호혜원리(민주주의)를 불식하는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것때문에, 예외적으로 [원제국의 봉건체제]라고 일컬어지는(불리는) 사태가 생겼다고 말해집니다. 

공동체의 호혜원리가 잔존했기때문에, 독자의 국가형태가 형성되었던 예로써, 그리스를 들 수 있습니다. 선행하는 미케네 문명은 이집트적인 집권적 국가이지만, 그것 대신에 변해온 그리스인은 소박한 전사 = 농민공동체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집권적인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을 방치해둔 것입니다. 도시국가가 난립하고, 그 사이의 항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 시민의 사이에서는 전사 공동체의 본연의 모습(올바른 자세)이 농후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것은 여러가지의 형태를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극으로(극도로) 스파르타의 코뮤니즘을, 한편으로는 아테네의 철저적인(철처한) 민주주의를 두었다고?놓고? 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테네의 <제비뽑기(추첨)> 민주주의


특히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서양 고유의 원리로서, 견습해야할 규범으로써 칭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대국가의 대의제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이질입니다(질이 다릅니다). 처음부터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지배자 공동체(=시민)의 원리입니다. 그것은 비시민인 노예를 지배하는 공동체입니다. 또, 상업에 바탕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시민인 외국인이나 거류 외국인에 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근대국가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모범으로써 견습하려했던 것은 확실하지만, 거기에 하나의 결정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몽테스키외는 그것에서 알아차렸습니다. 그의 생각에서는, 대의제는 귀족적이며, 제비뽑기야말로 민주적이다 ([법의 정신]). 그 점에서 말하면,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의회뿐 아니라, 모든 공직과 권한을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존재했던 이유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아테네가 부족적인 공동체를 극복하는것이 불가능했다는 [늦음(뒤짐)]에야말로 유래하는 것입니다. 





호혜성과 민주주의


아테네의 민주주의에는, 부족적 공동체의 평등주의가 관철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누군가가, 특권적인 지위를 점유하는 것을 있는 힘을 다해 피하려고 합니다. 그리스인 가운데는, 헤로도토스와 같이, 그들의 본연의 모습이, 페르시아와 같은 [동양적 전제국가]와 다른것, 그래서 그것이 문화적인 우월함을 주장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근대 유럽에 있어서 강조되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동양]에 대해(비해) 진보한 [서양]의 개인주의적 원리를 보는것은 재미있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호혜성에 입각한것이며, 예를들어,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이로코이족에도 그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들의 민주적 통치원리가, 아메리카 합중국의 창설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스에 있어서 집권화에 저항하는 것은, 전사 공동체에 있던 호혜원리인 것입니다. 그리스의 문명이 이와 같은 민주주의를 도입했던 것 뿐아니라, 그 역으로, 그것은, 이집트와 페니키아에 있던 문명의 다수를 계승하면서, 하나의 문명, 즉, 집권적인 국가체제만은 계승하지 않았다는 것에 의해 야기되었던 것입니다. 플라톤과 같은 사상가는, 소크라테스를 형에 처하겠다는것과 같은 민주주의에 반발했습니다. 그에 의해서는 이집트와 같은 국가야말로 바람직했습니다. 플라톤이 철학자=왕이 지배하는 것과 같은 국가를 생각할 때, 이집트가 염두에 있던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이중 시스템


로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그리스와 유사한 것이 있습니다. 로마도 도시국가이고, 공화정이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양적 전제국가와 같은 것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실제로, 제정에 있어서도, 황제지배와 원로원 지배의 이중 시스젬이 남아서, 황제들은 이른바 [빵과 서커스] 에 의해 시민의 지지를 얻는 것처럼 힘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폴리스가 저마다의 지연적인 공동체에 머물럿던 것에 대해(비해), 로마에서는 이민족을 [로마시민]에 포섭하는 원리를 갖고있었습니다. 그것에 의해 영토를 확장하겨 제국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던것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법의 지배]에 의해 다수의 민족을 통치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와 같이(같은 양식으로), 로마제국은 [노예제]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것은 언제나 노예를 획득하는 정복전쟁을 필요로 했습니다. 로마제국이 붕괴했던 원인은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