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 다지원 미학 시학 세미나 ∥2010년 9월 3일∥발제자: 박경옥
텍스트: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4 _ 방법으로서의 유토피아] 새물결, 2008 259~277p
1.1. 테너는 현재 루브르에 진열되어 있는 초상화 제작에 종사했는데, 대상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확대경의 사용조차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성하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 인간에게 있어 자기 자리를 내주고 그것의 지배에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기셀라 프로인트『19세기 프랑스에서의 사진』 [S 5a, 2]
1.2. “ ~ 과거의 회화의 위대함에서 현재 상태로의 이행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과 글 속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불안감, 무기력감이 다양한 관념으로 가득한 이 현대인을 괴롭히고 있다. 과거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그는 끊임없이 자기 방법의 한계를 느낀다. 분열되어 자기 자신에게 맞선 채 예술의 위대한 양식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를 정력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이 고귀한 예술가만큼 과거에 존재했던 힘이나 충실감의 쇠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또 없을 것이다.” 폴 발레리『예술론』 [S 6, 1]
1.3. “예술의 승리는 성격을 상실하는 것을 대가로 해서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칼 마르크스「1848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S 6, 2]
1.4. 돌프 슈테른베르거의 논문「거친 바다와 난파」는 ‘알레고리의 변용태들’에 몰두하고 있다. “알레고리에서 풍속화가 탄생했다. 알레고리로서의 난파는.... 세계의 가변성 일반을 의미하고 있다. 풍속화로서의 난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의 피안을 엿보는 구멍, 즉 위험으로 가득 찬 삶을 엿보는 구멍이다.... 이러한 영웅적인 풍속화는 사회의 재조직화와 화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시로 남아 있을 것이다”그는 특히 슈필하겐의 『해일』과 관련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S 6, 3]
1.5. 쾌적함이 공중의 주된 관심사였던 시대나 나라에서는 예술적 재능을 가장 덜 발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편리함은 양식을 배제한다.
역사적으로 공업의 진보는 예술의 진보와 결코 병행할 수 없다는 이 의문의 여지없는 결론. 에르네스트 르낭 『도더과 비평론』[S 6a, 1]
1.6. "각국의 수도의 인구가 급속하게 과밀화된 결과...방의 면적이 좁아졌다. 방이 너무 좁은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회화의 세기는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융성하는 것은 오직 판화뿐이다.“ 아메데 오장팡 「벽화」(프랑스백과사전) [S 6a, 2]
1.7. 『보바리부인』에 대한 보들레르의 서평. “리얼리즘 - 즉 모든 분석가의 면전에 던져진 욕설, 저속한 인간에게는 새로운 창조 방법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의미하는 막연하고 오지랖 넓은 말.” 보들레르『낭만파 예술』 [S 6a, 3]
1.8. 앵그르는 『에콜 데 보자르에 관한 보고에 대한 대답』에서 그는 처음부터 산업ꠐ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진ꠐ을 문제시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예술에 산업을 혼합시키려고 하고 있다. 산업! 절대 사절이다! 산업은 마땅히 있어야 하는 위치에 머물고 우리 학교 계단 위에는 절대 머무르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앵그르는 소묘를 회화교육의 유일한 기초로 삼을 것을 주장한다. [S 7a, 1]
1.9. 유겐트슈틸에서의 꽃들의 삶. 『악의꽃』에서 오딜롱 르동의 꽃의 혼을 거쳐 프루스트가 스완의 에로티시즘으로 짜 넣은 카틀레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아치를 그리고 있다. [S7a, 3]
1.10. 실제로 유겐트슈틸은 두개의 계보를 그리고 있다. 하나는 보들레르에서 와일드와 비어즐리로 이어지는 도착의 계보이며, 다른 하나는 말라르메에서 (슈테판)게오르게에 이르는 성직자의 계보이다. 그러다 결국 세 번째 계보가 강력하게 부각되는데, 이것은 종종 예술의 영역을 초월하기도 하는 해방의 계보로, 이것은 『악의 꽃』에서 출발해 『한 타락한 여자의 일기』를 낳은 하층민들과 『차라투스트라』의 저 높은 곳을 연결시키고 있다. [S 7a, 5]
1.11. 입센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해방의 정식. 이상적인 요구, 아름다운 상태에서 맞이하는 죽음, 인간이 안주할 수 있는 집, 자기책임(『바다의 부인』) [S 8, 1]
1.12. 유겐트슈틸은 오로지 양식만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S 8,2]
1.13. 『차라투스트라』의 영겁회귀 이념은 현존하는 것의 시간적 흐름을 극히 미세한 조각조각까지 양식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의 양식은 거기서 개진되고 있는 가르침에 의해 부정된다. [S 8, 2]
1.14. 유겐트슈틸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세가지 ‘모티브’. 성직자의 모티브, 도착의 모티브, 해방의 모티브. 이 세 가지 것이 모두 『악의 꽃』안에 있다. 성직자의 모티브는 「축복」, 도착의 모티브는 「델핀과 이폴리트」가 해방의 모티브는 「악마의 연도」가 해당한다. [S 8, 4]
1.15. 유겐트슈틸의 아우라적인 것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 보들레르의 「아우라의 상실」은 유겐트슈틸의 모티브와 결정적 대조를 이룬다. [S 8, 8]
1.16. 유겐트슈틸은 예술이 기술과 대결하려는 두 번째 시도였다. 첫 번째 시도인 리얼리즘은 복제기술의 새로운 양상에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유겐트슈틸에서는 이미 이 문제 자체가 배제되어 있다. 그들은 이미 기술과의 경합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유겐트슈틸 안에 감춰져 있는 기술과의 대결이 첨예해져갔다. 그들은 기술이라는 모티브로 회귀하는 것은 이러한 모티브를 장식적으로 중화시키려는 시도에서 발생한다. [S 8a, 1]
1.17. 유겐트슈틸의 근본적인 모티브는 불임의 성화이다. 신체는 오로지 성적 성숙에 이르기 전에 형태로만 묘사된다. [S 8a, 2]
1.18. 여성의 동성애는 여성의 자궁 자체까지 정신화 한다. 거기에는 임신도 가족도 일절 모르는 ‘순수한 사랑’의 상징인 백합의 표시가 세워져 있다. [S 8a, 3]
1.19. 기술에 의해 조건 지어지는 형태를 기능적 연관에서 떼어내 자연의 정수로 만들려는 -즉 양식화하려는- 반동적인 시도는 유겐트슈틸의 경우에서와 비슷한 형태로 한참 후 미래파에서도 등장한다. [S 8a, 7]
1.20. 유겐트슈틸에서 브르주아는 이 계급의 사회적 지배를 둘러싼 조건과는 대결하려고 하지 않으나, 자연에 대한 이 계급의 지배를 둘러싼 조건과는 대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조건에 대한 통찰이 부르주아 의식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압력을 회피하려는 신비주의(메테를링크)가 나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겐트슈틸을 통해 기술적 형태의 수용도 이루어졌다. [S 9, 4]
1.21. 개인, 집단, 대중 -집단은 풍속화의 원리이다. 유겐트슈틸에서 개인의 독립은 전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입센참조) [S 9a, 3]
1.22. 유겐트슈틸은 부르주아 계급이 자연 지배의 기술적 기반에 접근하는 한 진보이며, 일상을 더욱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되는 한 후퇴이다.- 부르주아는 살아갈 날이 길지 않다고 느끼고 그만큼 보다 젊게 살고 싶어하며, 더 오래 살수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아름다울 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자기를 속인다. [S 9a, 4]
1.23. 파이잉거의 ‘마치 .... 인 듯한’철학은 유겐트슈틸에 대한 사형 집행을 알리는 종소리이다. [S 9a, 6]
1.24. "엔비크 그리고 페레 형제의 초기작품과 더불어 건축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도피나 쇄신의 욕망은 원래 모던스타일파의 시도속에서 표명되었으나 그것은 무참한 실패로 끝났다.... 건축예술은 새로운 소재의 개발을 통해 부드러운 형식속에서 소생하려고 했다." 마르셀 자아르, 「건축의 현재의 경향」(프랑스백과사전) [S 9a, 7]
1.25. 보들레르는 풍속화를 절멸시키려고 한 유겐트슈틸의 시도의 선두에 서 있다. [S10, 1]
1.26. 센세이션에 대해. 센세이션을 초래하는 방식 - 새로움 그리고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 새로움의 가치를 박탈하는 것 - 은 19세기 중반 이후 독특하고도 과감한 표현을 만들어왔다.(가치의 인정과 가치의 박탈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S 10, 3]
1.27. 새로움. 새로움에 대한 의지. 새로운 것이란 결국 어떠한 음식보다 더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어버리고 만 자극적인 독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독에 사로잡히게 되면 죽음에 이를 위험을 감수 할 정도로까지 점점 더 양을 늘려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사물들 중 결국 사라져버리고 말 부분 - 바로 거기에서 새로움이 생긴다. - 에 집착하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폴 발레리『말하지 않은 것』[S 10, 6]
1.28. 전장인가 시장인가? “과거에는 문학에서도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활동하던 고결한 운동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네. 여러 유파와 유파의 지도자들..... 상호 투쟁하는 체계, 여러 가지 조류와 그에 반대하는 조류들.... 이러한 자랑 중 오늘날 무엇이 남아 있는가? 우리 선학들은 투쟁했네. 그러나 우리는 만들고 파네. 우리는 무질서의 한가운데 놓여 있으나 내 눈에 가장 분명하게 들어오는 것은, 전장 대신 엄청난 수의 가게와 작업장이 등장해 거기서 매일 새로운 유행품과 일반적으로 파리 물건으로 불리는 온갖 것이 팔리고 만들어지고 있는 광경이네.” “그렇네, 신유행품점,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사상가나 몽상가들에게 가장 적합한 단어이지.” 이폴리트 바부, 『무고한 이교도들』 (샤를 아슬리노에게 보낸 편지) [S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