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자 다지원 소식
8장 미메시스의 문제 281-303p 자영 발제 2010.3.5
2. 불확실한 대상성
1. 현실의 비규정적 대상을 어떻게 규정할 것 인가. (규정은 대상의 선택과 대상의 반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규정은 해당되는 대상의 본질적 계기들을 실체에 접근하도록 반영하며, 다른 한편으로 사실적, 객관적 비중에만 의거하지 않는 선별이 이루어져야 한다.
2. 모든 올바른 규정들은 정확성과 명징성을 지켜내면서도, 불확실성의 요소를 포함할 수 있다. 올바른 불확실성은 똑같은 행위를 통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도달하기 힘든, 미래의 발전을 위한 활동공간을 창출한다.
3. 현실 반영의 근본 사태는 객관적 대상 및 관계에 관한 규정과, 인간한계와 실천적 목표설정의 제약성이 가하는 제한 사이의 모순에서 야기된다. 마찬가지로, 미적 반영에서, 과학의 탈인간중심화 방법을 통해 인간학적 제약성을 상대적으로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원칙적으로 차단되므로, 이러한 근본사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생활과 달리, 인간의 한계들은 사실 차원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서 생산적인 힘으로 변모한다. 감각성 속에서 실현되는 발전은 미적 영역에서 집중성을 보여준다.
4. 예술작품의 규정적 성격은 정식화할 수 있는 원리를 드러내지만, 그 어떤 보편적 규칙도 없다.
5. 예술작품은 그 본질상 최종적인 어떤 것이며, 이것은 규정의 정확한 기능에 대한 요구가 다른 분야에서보다 엄격함을 보여준다. 일상이나 과학의 규정은 실천을 통해 수정되는 잠정적인 것이다.
6. 형상화 대상에 대한 규정은 개별 예술장르의 특수한 제약과 연관된다. 쉴러는 개별예술장르의 요구를 일상생활의 행위의 목적론적 동기의 위상으로 설정한다. 극, 소설, 노벨레의 ‘대상의 절대적 규정성’이 서로 다르다.
7. 형상화 대상의 확실성과 불확실성. (대상을 본질적으로 현실에서 개별적, 불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레싱은 회화에서 사물적, 감각적일 대상이 문학적으로는 인간 관계의 행위들의 대상적 매개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문학의 탈물신적 사명에서 예술의 핵심과 연관된다. 아가멤논의 왕홀은 직접적, 감각적 대상으로 보면 불확실하나(?), 왕홀의 역사와 사회적 역할 등의 결과로 전체적 상황의 미적 체험을 환기하는 것으론 -객관적 상을 가졌다-충분하다.
8. 이는 문학에서 디테일에 관한 철학과 연결되는데, 디테일은 본질적 측면을 드러내줄 때만 타당하다. 규정의 내용이 불확실성을 미리 정해주는 한계를 설정하며, 물신화와 독단을 피한다는 의미이다. 확실성 혹은 불확실성의 양적 혹은 질적 계기를 고려해야 한다. 절제된 확실성 혹은 잘못된 과잉 여부에 대한 판단은 원칙에 입각하여 명확하게 얻어진다. 그러나, 원칙의 미적 합리성은 다원성을 포함하며, 추상적, 보편적 규칙은 배제한다.
9. 어떤 디테일이 대상을 작품 안에서 규정하며, 현실대상에 대한 어떤 규정이 예술작품을 위해 규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야 하는가는 시대, 양식, 예술가에 대한 보편적 구상이다. 대상성에 대한 보편적 구상은 추상적으로 가능한 디테일의 복합체를 배제하고, 문제의 본질에 걸맞는 복합체는 등장시킨다. 디테일의 양적 문제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활동공간 내에서만 떠오른다.
10. 조형예술의 외적인 것의 예술적 형상화는 반드시 내적인 것을 환기시켜왔다. 내적인 것이 외적으로도 드러나고 그 역도 성립하는 경우와 내적인 것이 시각적 구현과 무관하게 느슨한 관계로 독자적 존립하는 경우(헤겔의 표현)중 전자는 정상적 미적인 것, 후자인 알레고리화는 일탈한 것으로 본다.
11. 조형예술에서는 동질적 표현매체가 오직 외적인 것에만 확고한 형상을 부여하며(여기서 ‘시각적으로 확실하다’는 ‘시각적으로 적절하게 규정되다’는 의미로 보인다), 내적인 것은 불확실성의 상태에 머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미적 확실성이 가능하다. 함축내용에 대한 풍부한 해석들 중 어떤 것이 수용자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고, 어떤 점이 불확실한 확실성의 작용공간을 객관적, 사상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을 발전시켜야 한다. 내적 불확실성은 완전히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규정된 작용공간 안에서 움직인다. 내적 불확실성의 작용공간은 폭넓은 호소력과 감정을 일으킨다. 햄릿,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의 작품
12. 예술의 외관상의 시각적 확실성에는 인간 영혼의 내적 불확실성이 상응한다. 일상의 인간관계는 불확실성을 갖는데, 종합능력, 일반화로 인해 불확실성의 작용공간이 협소화되더라도, 사실 개별성은 압도적이며, 타인과의 반작용, 자기자신의 내면 등의 불확실성은 극복 불가능하다.
13. 그러나 일상과 달리 예술에서는 첫째, 일상의 외적인 모든 것이 단지 시각적인 것으로 환원된다, 둘째, 내면성은 -외적인 것과 관계해서- 일반화된 성격을 가지고 고양되므로 -개체적 특성은 사라지고-전형화의 작업은 수용 태도 속에 진정한 자발성과 만난다. (자발적으로 보편적 감성을 환기시킨다는 의미 같다. 어떤 작품에서나 악인은 다른 이름일지언정 악에 대한 감정, 생각을 부른다) 셋째, 수용자는 형상화된 대상에 대해 생활 속의 인간을 대하는 것과 흡사한 관계를 맺게 된다. 예술의 인간중심적 본성은 예술발생의 전제조건이다. 예술에서는 인간적인 것이 대상에 내재하며, 동시에 시각적 관계로만 드러난다, 예술가의 의식적인 노력이 대상의 정확한 재현을 지향하는지 아니면 자기 개성의 표현인지 여부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14. 개별적인 것들은 예술에서 보편성으로 고양되어, 하나의 세계에 대한 표현이 된다. 불확실한 대상성은 규정된 구체적 내용의 작용공간을 획득한다. 즉, 수용자는 정확하게 규정된 대상적 세계와 대면한다. 내용의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작용공간은 형상화 대상의 내용적 본질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형식부여의 특질은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한다. 도상학은 표현된 대상이 구체적이고 특정한 내용을 지닌 것을 다룬다. 도상의 내용이 구체적 예술적 형상에서 분리되고, 규정되지 않은 내용성이 내면성에만 머무르면서 추상적 외면성이 되어버린다.
15. 내면화된 내용의 불확실성의 성립여부는 외적 대상의 시각적 세계에서 그것이 형상화되는 강도와 방식에 달려있다. 외적 대상의 시각적 세계의 불확실성은 내면성을 없애버리고, 반면 시각적 규정이 과도할 때도-더불어 내용상의 근거가 확실할 때- 작품은 무미건조하다. 시각적인 세계가 문학적 테마의 도해에 그칠 때-알레고리 비판.
16. 가시적 대상과 무관한 초월성, 내용의 사상적 특성은 종교나 심오함과 무관하다. 풍속화풍, 아카데미즘, 전위주의 등은 알레고리적 이다. 전위주의는 모든 것을 해체하거나 아무것도 해체하지 못하는 무이다.
17. 음악은 조형예술과 반대로, 내적인 것이 최고도의 확실성을, 외적인 원인이나 계기는 가장 비규정적인 상태로 남는다. 음악도 내면성에 따라 질서를 부여하고 청취자의 체험을 이끄므로, 형식상의 확실성을 능가하는 높은 수준의 불확실성을 가진다. 현대음악 역시 느슨할지언정 내용적, 모방적 특성을 갖는다.(현실의 내용적, 모방적 성격을 갖는 한 현실의 불확실성을 공유하는 것이 조형예술과 마찬가지의 논리로 성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으로 엄격히 지정된 주제로부터 해방.
18. 감각적으로 특정하게 규정되어야 할 영역에서 불확실성, 또는 과도한 확실성의 위험은 이에 대응하는 불확실한 대상성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는 창작자의 본능적 저항력, 수용자의 단련된 통제태세 둘 다 감퇴하고 있다.
19. 음악은 현실을 개별이 아닌 전체와 연관시킨다. 일반화 수행. 전체가 절박하게 체험되고, 온전하게 발현되는 고양된 감정으로 승화. 표제음악은 과도한 확실성의 위험이 있다. 음악적 형식의 확실성과 미적 체험으로 환기된 비규정적 대상성-불확실성-의 세계는 공존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구체적 불확실성일 때 타당하며, 불확실성이 구체적 확실성을 획득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 사이에는 경계선이 없다. 전원교향곡은 표제음악이나 과도한 확실성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도 있다.(불확실성의 판단 기준이 애매함)
질문 & 토론
1. 판단 기준의 문제
-8번의 확실성과 과잉의 판단 기준이 명확하다-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번에서 수용자의 느낌과 불확실한 확실성의 작용공간을 객관적, 사상적 해명하려는 시도를 구분하는 기준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주관적인 느낌에 치우치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성을 사상적, 정서적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18번에서 창작자, 수용자의 능력이 모두 감퇴된다고 했다.
2. 13번 마지막 줄에서. 루카치는 개성이나 개인성을 넘어선 예술을 올바른 예술로 보므로 예술가의 의식적 노력을 개성의 표현보다는 대상의 재현(올바른 반영)에 초점을 두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의 예술가를 설명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이 문제는 책이 끝난 후 제기될 성질의 것 일 수도 있다.) 물론 개성의 표현이,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를 올바르게 반영할 수도 있을 것이나 이 때도 개성은 반영을 위한 수단으로 설명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나 개성이 부차적인 것으로 되는 문제를 피할 수 없지 않을까?
7번 보충: 아가멤논은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를 위해 만든 상아 홀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것은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통해 아가멤논의 할아버지인 펠롭스에게 준 것이었다. 이 왕홀은 그리스군의 지휘권을 상징하기도 했고, 회의에서는 발언권을 얻는 역할도 했다.